190523 – 침식을 막기 위하여

  • 광기가 머리 끝, 정확히는 왼쪽 안구 안쪽의 뼈에서부터 시작하여 몸의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한다. 나는 미쳐버린 나머지 이전에 부서졌던 모니터를 완전 분해해 버리고, 벽을 미친듯이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서 엄청난 자괴감에 휩싸여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다… 나는 숨쉬기 밖에는 할 수 없는 인간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 사실 나는 숨조차도 제대로 못 쉬는 인간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인간으로서 완전한 실격을 한 셈이다. 그렇다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내린 인간실격 판정에 대하여 웃음만 나올 뿐이다. 절대로 울음이 터지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수천 번을 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태인데도 말이다.
  • 분노로 내 영혼을 더럽히지는 말자.
  • 이성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나는 살아야 한다. 아무리 파괴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이나 값비싼 물건에 도달하면 안 될 것이다. 그 정도의 이성은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 여덟시/아홉시 뉴스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출연할 것이다. 물론 그럴 리가 없겠지만, 나는 그럴 바에는 조용히 죽는 것을 선택하리라. 조용하고 아프지 않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일단 아프지 않은 죽음이란게 너무 레어한 것이다. 그런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 차라리 죽는 것 보다는 소멸하는 것을 선택하고 싶다.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나를 소멸시킴과 동시에 내가 사라진다고 슬퍼할 사람도 없도록 모든 관계와 상태에 대한 메모리를 한 번에 정리해줄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적어도 200만원 정도는 낼 의향이 있다. 그 이상은 내 월급을 초과하기 때문에 무리.
  • 내일은 다시 병원에 간다. 역시 약만 받으러 가겠지만, 점점 심해지고 미쳐가는 나의 상태를 제대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나는 10년도 넘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나도 알지 못했던 난폭한 성향이 언젠가 사람이나 생명체를 해칠 가능성이 있는지, 내가 좀 더 심층적이고 정밀하고 객관적인 정신 분석을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처음 진단을 받은 이후로 증상이 더 심각해진 것 같은데 정말로 괜찮은 것인지 등을 물어봐야 할 것이다.
  • 열심히 살아야 할텐데. 지금 내가 이걸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은 없지만, 운명이 그렇게 이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으니까. 내가 지금 운명을 거부한다면 내가 미안해 해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